드라마에선 위와 같은 대사가 종종 나온다.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에
자신과 조건이 맞지 않는 상대방과의 이별을 인정하는 주인공들이 감성 어리게 주로 하는 대사이다. 그렇다면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
사람과의 이별을 정당화 할 수 있을까? ‘원스 어폰어 타임인 아메리카’에서는 데보라를 둔 누들스와 맥스의 사랑이야기가 나온다. 이들의
사랑은 사랑의 동기의 측면에서 봤을 때 차이점이 있다. 누들스는 순수한 마음으로 데보라를 사랑한다. 하지만 맥스의 경우 단순히 미모가 가꾸어진
여자이기 때문에 데보라를 사랑한다. 얼핏 보기엔 누들스는 선한 사랑을 하고 맥스는 악한 사랑을 하고있는 듯 보인다. 하지만 누들스 또한 선한
사랑이라고 말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. 누들스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상대방인 데보라를 생각하지 않았다. 자신의 사랑을 데보라에게 억지로 강요하기
때문이다. 누들스는 순수한 마음에 데보라를 사랑했지만 그 또한 맥스와 같이 자신만을 위한 사랑을 했다.
본문내용 건이
맞지 않는 상대방과의 이별을 인정하는 주인공들이 감성 어리게 주로 하는 대사이다. 그렇다면 정말로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
정당화 할 수 있을까? ‘원스 어폰어 타임인 아메리카’에서는 데보라를 둔 누들스와 맥스의 사랑이야기가 나온다. 이들의 사랑은 사랑의 동기의
측면에서 봤을 때 차이점이 있다. 누들스는 순수한 마음으로 데보라를 사랑한다. 하지만 맥스의 경우 단순히 미모가 가꾸어진 여자이기 때문에
데보라를 사랑한다. 얼핏 보기엔 누들스는 선한 사랑을 하고 맥스는 악한 사랑을 하고있는 듯 보인다. 하지만 누들스 또한 선한 사랑이라고 말하기
힘든 측면이 있다. 누들스는 자신의 사랑을 위해 상대방인 데보라를 생각하지 않았다. 자신의 사랑을 데보라에게 억지로 강요하기 때문이다. 누들스는
순수한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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